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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튤립 [식물 일기] 기다리던

늦여름쯤이었을까? 농원을 운영하는 블로그의 이웃이 구근을 판매한다는 글을 보고는 구근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사들였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510개 정도 샀을 수도 있지만 지금 보니 50개 정도 산 것 같다. 이른 봄 정원을 가득 메우는 구근을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었다. 총 두 곳에서 세 번 시킨 것 같으니 첫 번째 주문은 아이리스 구근, 두 번째는 튤립 구근과 히아신스 구근이었다

구근이라고 하면 튤립 구근만 생각할 뿐 아이리스와 히아신스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구근 소식을 듣자마자 당장 샀을 수도 있다. 첫 주문은 아이리스의 구근이었다. 보라색 색감으로 차분하게 피어나는 아이리스가 보고 싶었다. 구근을 사면서 캄파놀라 모종도 함께 주문했다.

혼자서는 구근 관리를 못해 일부는 지인에게 건넸다.지인들에게 매번 2, 3개씩 나눠줄 생각으로 몇 개를 샀다. 늦여름의 일이니 석 달은 더 지난 일이다. 작은 구근을 보면서 곧 봄이 오면 꽃이 필 거라며 꿈에 부풀었다. 알뿌리를 심고 종종 영양제를 주며 서서히 물을 주고 싹이 트기를 기다렸다.

구근을 키우는 방법을 설명해 놓은 판매자의 글을 읽으면서도 구근을 키우는 게 별로 어렵지 않게 읽혔기 때문이다. 그때는 쉬울 줄 알았어. 심어놓은 구근은 일찍 싹이 텄는데 이때부터 예상 밖의 전개가 일어났다.

아이리스 구근이 곧게 쪽파처럼 자라는 현상이 일어났다.아이리스 구근을 함께 구아한 친구가 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수줍게 얼굴을 내민 아이리스를 보자마자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진을 보기 전까지 내 구근이 비정상적인 외모로 자라는 걸 몰랐다. 구근을 처음 키웠기 때문일 것이다. 구근이 꽃을 피우려면 꽃봉오리가 생길 공간이 필요한데 내 구근은 그렇지 못했다.

알뿌리가 마치 쪽파처럼 곧게 뻗어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잎사귀 끝에 응어리가 생겨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그게 안 된다. 끝은 노랗게 변해 있었다. 혹시나 하고 판매자에게 물어본 판매자는 내 구근도 조금씩 싹이 트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괜찮아질 겁니다. 그래서 잎 끝이 노랗게 변하는 건 좋지 않아요라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아이리스는 꽃을 피울 수 없다고 판단해 쑥 뽑아 작은 정원에 심어 놓았다. 심어도 못 자라는 패거리지만 아쉬운 마음에 그냥 그렇게 해 두었다.

두 번째로 산 히아신스 공 뿌리와 튤립 구근 이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2-3 차로 히아신스 구근과 튤립 구근을 샀다. 창고 한쪽에 모아둔 플라스틱 화분을 하나하나 꺼내 배양토를 꺼내 하나씩 심었다. 이번에 온 구근은 이미 약간 싹이 텄고 구근을 싸고 있는 껍질을 벗겨 넣기도 했다.

결국엔 심으려고 했지만 용기가 없어 좋은 우유 상자에 담았다. 결론적으로 굿밀크 우유통에 심은 구근 4개는 잘 안 됐고 그들도 아이리스 구근처럼 땅에 잘 묻어줬는데.( ´ ; ω ; ` )

50개 중 15개 정도는 지인에게 주었고 나머지 35개 중 10개 정도는 잘 안 됐고 결국 나머지 25개 정도만 지금 내 곁에 생존 중이라며 이렇게 구근을 펴기 어려운 줄 몰랐다.

이게 잘 자랄 것 같아요.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하나 하나 사라지는 가운데 일부는 자기 시간에 맞춰 싹을 틔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기다란 플라스틱 화분에는 8여 그루가 심어져 있는데 그 중 2개가 아주 가늘고 길게 뻗어 있다. 앞서 말한 아이리스와 달리 꿈을 창조하고 있다. 이걸 보면서 아, 구근이 이렇게 커야 꽃을 피우는구나 싶었다.

지금은 구근을 볼 시간이 많지 않지만 한창 구근을 관찰할 때는 조금씩 싹을 틔우는 친구들을 보며 흐뭇한 생활을 했다.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니 대견하고 생명의 신비에 대한 경외심까지 갖게 됐다. 도대체 저 둥근 구근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기에 온도와 물과 햇살의 양이 적정할 때 잎을 여는 것일까 하는 신비감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꽃을 피우는 친구가 생겼다. 왼쪽은 초가을, 오른쪽은 찬바람.마침내 꽃을 피운 친구가 생겼다. 나의 1호 튤립! 이틀 전인가 12월 23일, 오랜만에 구근을 보러 왔다가 OH MY GOD! 핑크빛 튤립이 생긴 것을 발견해 버렸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뿅 꽃을 피웠다. 이른 봄에 자랐는데도 아무리 실내에 있어도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공간에서 건강하게 꽃을 피워주다니,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나의 1호 튤립과 함께 성장세를 함께한 구근은 모두 3가지다. 나머지 구근은 아직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을 뿐 본격적으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느껴진다. 나의 1호인 튤립도 불과 2개월 전까지 다른 식물이 심은 화분에 세 들어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손가락만 한 크기로 자라던 구근은 어느새 꿈을 만들어냈다.

그러다가 갑자기 12월 23일에 꽃을 피웠다.초겨울인 1호 튤립은 키가 크지 않았지만 12월 23일 만난 튤립은 키가 훌쩍 자라 있었다. 마치 초등학생이 어느 시점에서 어른의 키가 되는 것처럼 꽃대가 자라고 있었다.

1호 옆에는 여전히 싹을 틔우는 나만의 시간을 기다리는 구근이 놓여 있다. 보라튤립, 하얀 튤립, 빨간 튤립 등 여러 가지를 샀는데 이 꽃이 자랐을 때는 어떤 느낌이 들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거 진짜 자랑해야 돼. 1호 튤립은 부드러운 분홍색이 감돌았다. 은은하게 그라데이션 되는 것처럼. 조용히 핏줄이 퍼지듯 분홍색이 꽃잎 바깥을 향해 내닫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향은 나지 않고 채소인 무향기 같은 게 났다. 목은 아주 길게 자랐고, 작은 뿌리를 가졌지만 아주 튼튼하게 서 있었다. 이 사랑스러움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거야?!!!

너무 좋아요, 1호 튤립꽃을 피운 1호 튤립은 더 이상 셋집에 살지 말라고 단독 화분에 옮겨 주었다. 사람들의 오가는 곳에 놓아둔 아름다움을 보고 조금이나마 울적한 마음을 씻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놓아두었다

길게는 2주일 정도 가진 꽃을 일찍 놓기가 아쉽지만, 그래도 힘든 시기에 선물처럼 와준 튤립을 보며 다시 식물에 대한 기쁨을 되찾고 싶다. 제발 오래가길 바라는 1호 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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